금융기관 제1금융권의 잘나가는 은행원! 느닷없이 닥친 명예퇴직! 옛날 얘기이나 요즈음 세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금융기관 명예퇴직/은행원 명예퇴직)
어느 은행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나 현재 50대 나이에 현직 은행원이라면 공감이 갈 런지요. 저는 옛날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사실 은행이라는 직장은 예나 지금이나 상당이 매력 있는 직장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특히 과거 우당(愚堂)이 은행생활을 했던 시기 중 70~80년대에는 은행원의 인기가 대단했다. 70년대 초에는 우리나라 경제여건상 변변한 직장이 없는 시기이고 대기업들의 창업역사도 일천할 뿐만 아니라 비로소 기업체들이 새로 생겨난 시기이고 그나마 기존의 불과 손꼽을 수 있는 대기업조차도 규모가 빈약한 시기인 반면 상대적으로 은행이라는 직장은 오랜 역사와 안정된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이는 시절 이였으며 복리후생측면은 물론 근무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금융기관 명예퇴직/은행원 명예퇴직)
따라서 70년대 초에는 우당이 풋풋한 총각 시절이었으며 그때만 해도 놀이문화가 별반 없을 때 인지라 비교적 샐러리맨들이 엄두도 못내는 유흥업소인 비어(beer)홀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업소에 처음 가는 곳에서도 당시에는 신용카드 등이 없는 시기인데도 은행원이라면 후불조건인 외상으로 사인(sign)만하고 나와도 자주 찾아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였을 정도로 은행원의 인기도는 대단하였다 그때는 총각 은행원 신분이 여대생들의 괜찮은 신랑감 인기도 조사에서고도 곧장 1위를 차지하곤 했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전광석화같이 지나간 그 세월들이 인생을 살면서 별 도움이 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선 은행직장이라는 곳은 급여 면에서 우월하고 복리후생 면에서도 국내최고이니 직장 내 분위기도 최고였다. 결국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대기업이 성장하고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은행원의 인기는 다소 시들하였으나 그래도 다른 기업 등에서 제날짜에 급여를 못주는 사태가 발생해도 은행은 먼 나라 얘기인 냥 실감을 하지 않았다.
인간이란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정신을 차린다고 하였든가. 80년대 후반이후 90년대까지 은행들의 과당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앙은행의 규제가 강화되고 지준부족 현상이 도처에서 발생하는 등 급기야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은행원 개개인의 급여나 복지에는 전혀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청천벽력의 IMF 사태를 맞아 명예퇴직이라는 새로운 신조어인 퇴직제도가 생기면서 수십 년 나태하게 살던 은행원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었다. 그러나 인간이란 타성에 젖고 습관이 되면 그 습관을 과감하게 벗어버리지 못하고 설마 나에게는 불행한 일, 즉 은행을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니 생각하고 습관에 젖어 생활하던 중 이거 어인일인가? 어느 날 갑자지 말이 명예퇴직이지 자기의 퇴직금에 몇 푼 더 보태주는 모양 세를 갖추어 아무런 대책 없이 은행 문을 나서게 되었다. 과거 은행 선배들은 아무 탈 없이 정년까지 은행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하고 태연한 마음으로 있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는 꼴로 은행 문을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 50세 전후이니 한참 일할 나이에 퇴직하여 수순(手順)에 의해 처음 1~2년은 폼 나게 나름대로 골프니 뭐니 여가를 즐긴다. 그러나 약 2년이 지나면 골프 치는 돈이 아까우니 등산 등으로 돌린다. 그러다가 등산도 흐지부지 결국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 보니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는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은행 문을 나서는 우당과 비슷한 연배들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이 사실상 사회초년생 보다 못한 바보가 된 모습이었다. 그동안 수십 년 세월동안에 아무 걱정 없이 지내게 한 은행원인 우리들은 절실하고 다급한 상황이 없어서였다.
생각하면 너무나 한심하기 그지없는 것이 나 자신이 이 비정한 사회 현실 속에서 과연 할 줄 아는 것이 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정말 한심하였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당장 눈앞에 닥친 우리들의 현실은 엄격하기만 한 것을... 은행원이 퇴직하면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퇴직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직 아이들의 공부도 끝나지 않았었고 자녀들의 결혼도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불과 5년 이내에 쪽박신세가 되기도 한다. 공무원이나 선생님을 하신 분들은 퇴직 후에 늙어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는다.
당시 창업 붐이 일기도 하였는데 만약 일을 한다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이론일 뿐 은행출신은 사실상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대하여 나 자신도 대단히 놀라운 일이였다. 냉정하게 나를 평가해보니 수십 년 은행 일을 하였음에도 세무회계일은 물론 사사로운 회사의 경리일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영어한마디를 할 줄 아나, 컴퓨터를 할 줄 아나, 그렇다고 글 쓰는 솜씨가 있는가, 정말 무지하고 무식의 극치였다. 은행 일이라는 것이 순전히 기계적으로 수십 년 루틴하게 젖어온 터라 오로지 잘하는 것이라고는 좁쌀영감처럼 몸과 마음을 웅크리고 바람 부는 대로 휩쓸려 다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금융기관 명예퇴직/은행원 명예퇴직)
그러나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우당(愚堂)은 천운이 있어 은행대리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취미로 했던 역학(易學)공부와 성명학 공부를 했던 것이 지금 나를 바꿔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사람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고 힘이 된 것은 소직이 77년 초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지금의 우당의 생활은 너무나 기적적인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리고 싶다. 현재 네이버 카페 회원 수가 상당수에 육박하고 전국 어느 곳에서든 우당을 찾아 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 광영이 어디 있겠는가. 꼭 경제적으로 다소의 도움이 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앞으로도 상당기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특혜중의 특혜이리라. 더욱 겸손한 마음과 몸가짐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어느 분은 불과 수년의 공부로 간단히 작명가의 길을 걷는 분들도 계시겠으나 대부분 그런 분들은 기초가 약한 작명가들인바 처음에는 그럭저럭 견디긴해도 시간이 가면서 인지도가 떨어져 도태되고 말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 생활은 인터넷 시대이다. 우당이 나이가 많다하여 컴퓨터를 외면하고 인터넷을 외면해 버린다면 이 일도 해먹을 노릇이 못되리라. 현재 은행생활 중에 있는 후배들은 달라져야한다. 한 가지만 강조하고 물러나려한다. 하루에 한 번씩 내가 나이가 들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메모해 놓은 습관을 길러라. 그리고 컴퓨터를 절대 소홀이 하지마라 라는 것이다. 컴퓨터를 잘하면 여러 가지 길도 보인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두서없이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우당은 1999년 3월 51세의 나이로 은행생활을 마감하였다)
우당작명연구원 홈페이지(http://www.unsename.com) 우당작명연구원 카페 (http://cafe.naver.com/21unse) 상기글은 우당작명연구원 전속 네이버 카페(아래)에서 2014년 4월 4일 작성된 글입니다( https://cafe.naver.com/21unse/10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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